20세기 학문의 발달은 특히 과학 분야를 중심으로 매우 환원주의적인 방법론을 고수했다. 본래 하나의 분야로 간주되었던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이 내부적으로 무수한 갈래로 뻗어나갔고 세계적인 학자라해도 자기 분야가 아닌 이상 옆동네 얘기도 외계인의 언어처럼 들리는 세분화 된 학문 세상에 살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비단 자연 과학에만 국한되지 않고 엔지니어링 쪽에서도 마찬가지 인듯 하다. 우리학교 컴퓨터 공학과 대학원 랩만 해도 크게 시스템 소프트웨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데이타베이스, 네트웍, 고성능컴퓨팅연구 그리고 인공 지능을 다루는 일련의 랩들(기계 번역이나 자연어 처리, 미디어 프로세싱) 등으로 세분화 되어있다. 그리고 한 분야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대학원생들은 다른 분야의 지식이 거의 전무한 것 또한 사실이다.
대부분의 도메인에서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들은 이미 대부분 정리되고, 매우 수학적이고 복잡한 접근을 요구하는 이른바 곁다리 문제들만 남은 현실에서 자기 분야 문제 하나를 풀기위해서만 엄청난 시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말그대로 곁다리 문제이기 때문에 그걸 풀어낸다고 해서 인간 생활에 그다지 큰 변화가 오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결국 학자로서 인류 생활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방법은 완전히 새로운 학문 영역(domain)을 만들어 내거나, 기존의 영역들의 경계점에 속해서 어느 쪽으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했던 교차점을 발견해 내는 두 가지 방법이 있을 것 같다. 완전히 새로운 학문 분야의 발견은 그 특성상 신의 선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을테니,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여러 학문을 통합하여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것일테다.
문제는 이런 스타일의 연구를 뒷받침하기 위한 지원이나 노력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대학에서 복수 전공을 한다고 해도 학사 일정이 서로 겹치고 빠듯하여 결국 한 쪽도 제대로 못하는 양쪽 학문 모두에서 절름발이가 되기 쉽상이다. 또 최소 한국 현실의 대학원에서 특별히 다른 분야의 랩과 공동 연구를 하거나 하는 경우가 무척 드문것 또한 사실이다.
생명과 컴퓨터, 경제와 심리처럼 완전히 별개로 보이는 학문간의 결합이 아니라, 컴파일러, 프로그래밍 랭귀지, 시스템 소프트웨어 그리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등이 가미되어 생산성 있고 획기적인 프로그래밍 수행 환경과 툴셋을 만드는 연구 등도 분화된 현재의 학문 세상에서는 틀림 없는 학제간 연구다. 어쨌건 이런 현실을 탓하기보단 나름대로의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최대한 많은 분야에 두루 관심을 두고 필요할 때 깊이 파고드는 능력이 중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