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마다 제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팀장이 팀원들의 휴가를 승인합니다. 휴가는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이지만, 하나의 팀으로 같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입장에서 팀원의 휴가가 프로젝트 일정에 문제가 없도록 미리 조정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 원래 취지입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다음 사례를 살펴봅시다.
당신은 얼마 전 팀장으로 승진한 초보 팀장입니다. 오후 3시 나른한 오후 팀원A가 당신에게 슬쩍 찾아와서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팀장님 내일 오전에 주민센터에 서류 뗄 일이 있는데, 오전 반차 사용해도 될까요?”
이에 대한 반응으로 옳은 것은?
- 무슨 서류 떼야 하는데? 그거 인터넷으로도 뗄 수 있는 거 아냐?
- 내일 오전 반차를 지금 가져오면 어떻게 해? 미리 얘기할 수 없었어?
- 굳이 오전 반차를 사용해야 해? 아침에 조금 늦어도 괜찮으니 볼 일 보고 출근해.
- 안 돼.
1, 2, 3, 4번 모두 우리가 회사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반응들입니다. 무조건 안 된다는 4번 반응을 제외하면 각각의 반응은 팀장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에서 절충안을 찾거나 대안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휴가 사유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는 게 사생활 침해가 될 소지도 충분히 있습니다. 따라서 모두 오답입니다.
이 상황의 문제점은 팀장과 팀원 모두 프로젝트가 아닌 휴가 자체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휴가 사용 시에 프로젝트 일정에 차질은 없는지, 차질이 있다면 어떤 식으로 조정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지 않고 휴가 사용 여부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팀장 입장에서는 무조건 휴가를 못 쓰게 하는 방법밖에 없고, 팀원 입장에서는 이러한 간섭이 부당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팀원이 휴가를 요청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주민센터에 서류를 떼야 한다는” 휴가의 사유만 설명하고 있고, 본인이 프로젝트에서 맡고 있는 일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팀원이 휴가 사유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있기 때문에 팀장도 자연스럽게 휴가 사유가 적절한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가능성이 큽니다.
예를 들어, 내일 여자 친구와 100일이어서 하루 휴가를 쓰고 싶다면? 팀원 A는 여자친구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당연히 휴가를 내야할 사유지만, 회사 일을 중시하는 팀장 입장에서는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요즘 애들의 개념 없음이 됩니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팀장 입장에서 팀원의 휴가 사유가 무엇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팀장에게 중요한 것은 팀원 A의 휴가로 인해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차질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입니다.
팀원 A가 휴가를 내는 올바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팀장님 내일 개인 사정으로 오전 휴가를 사용하겠습니다. 내일 끝내기로 한 기능 X는 80% 정도 완료되어, 오후에만 작업해도 일정에는 크게 차질이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만, 팀원 B가 X에 대해 리뷰하기로 되어 있는데, 전달 시점이 반나절 정도 늦어질 것 같아서 팀원 B와 작업 순서를 조정하겠습니다.”
팀원 A가 제시한 안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바로 휴가를 승인하면 되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보완할 방법을 찾아주는 것이 팀장이 역할입니다. 우선순위가 낮은 일은 다음 마일스톤으로 미루고 팀원 A의 일 일부를 다른 팀원에게 나눠줄 수도 있습니다. 미팅이 있거나 같이 진행해야 할 업무가 있다면 미리 연락하여 조정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물론 이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휴가를 사용하면 어쨌거나 업무 시간 줄고, 애시당초 프로젝트 일정에 휴가를 고려한 일종의 “버퍼”가 전혀 없다면 업무를 조정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프로젝트 관련 지식을 팀원들이 서류 공유하고 있지 않으면, 팀원 한 명이 자리를 비우면 대체할 사람이 없으므로 휴가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정리하면, 휴가를 낼 때 “휴가의 사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의 일정”이 중요합니다. 팀원은 팀장이 보기에 그럴싸한 휴가 사유를 생각하는데 시간 쓰지 말고, 내가 맡고 있는 일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책임감 있게 챙기는 자세가 더 중요합니다. 팀장도 휴가를 무조건 못 쓰게만 할 게 아니라 휴가로 인해 프로젝트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프로젝트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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