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면 투명하고 안전한 아이템 거래가 가능해진다. 유저가 블록체인 상에 발행된 게임 아이템을 구매하거나 획득하면 해당 아이템에 대한 소유권을 보장 받는다. 유저는 다른 유저와 아이템을 거래할 수도 있고 아이템 마켓을 통해 아이템을 판매할 수도 있다. 게임사는 유저 간 거래에 수수료를 부과할 수도 있고 직접 아이템 거래소를 운영하여 거래를 중개할 수도 있다.
블록체인 기술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기존 게임사들은 블록체인 기술 도입을 망설이고 있다.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게임 아이템을 블록체인 상에 발행할 경우 게임 유저 간 아이템 거래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해진다. 게임 아이템 거래를 통해 현금화가 가능해지면 사행성 논란을 피해갈 수 없다. 또한 아이템 거래가 투자의 수단이 될 경우 게임 아이템을 일종의 유가증권으로 해석하고 증권거래세를 부과하자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다.
국내 게임의 경우 게임 내 거래소를 통해 현금성 자산을 거래할 수 있으면 사행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현금성 아이템인 다이아를 이용하여 아이템을 거래할 수 있는 리니지 M이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을 받았다. 결국, 리니지 M은 거래소를 제거한 버전을 추가로 출시하여 12세 이용가 등급을 받았다.
게임 내에 거래소를 없앴다고 유저 간 아이템 거래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미 아이템베이나 아이템매니아 같은 아이템 거래 사이트를 통해 활발한 아이템 거래가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안전하지 않은 아이템 거래로 발생하는 문제는 게임사가 떠안으면서, 수익은 아이템 거래 사이트가 가져가는 구조에 있다. 정부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국내에는 이미 1조 5천억 규모의 게임 아이템 현금 거래 시장이 형성되어 있으나 정작 게임을 개발한 게임사는 이 시장에서 배제되어 있다.
이러한 딜레마에 해결책은 없을까? 최근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증권형 토큰(security token)이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증권형 토큰은 주식, 채권, 파생상품, 부동산, 예술품 등 실물 자산에 대한 권리를 블록체인 상에 토큰 형태로 발행한 것을 말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Securitize, Harbor, Polymath 등의 증권형 토큰 발행 플랫폼을 통해 증권형 토큰을 발행한 사례가 등장하고 있고, 미국 증권 거래소의 인가를 받은 ATS(Alternative Trading System)에서 이렇게 발행된 토큰들을 거래하고 있다.
증권형 토큰이 비트코인, 이더리움와 같은 유틸리티 토큰(utility token)과 다른 점은 발행 및 거래 시에 증권거래법을 포함한 관련 규정을 준수한다는 점이다. 일례로, 미국의 벤처캐피탈인 블록체인 캐피탈은 2017년 4월 신규로 결성한 $50M 규모의 펀드 중 $10M을 토큰 형태로 LP들에게 발행하였다. 블록체인 캐피탈이 발행한 BCAP 토큰은 Reg D 506C를 준수하는 증권형 토큰으로 99명의 적격 투자자(accredited investor)만 투자할 수 있다.
BCAP 토큰은 증권형 토큰 프로토콜 중에 하나인 DS Protocol을 따르는데, 토큰을 거래할 때 관련 컴플라이언스를 자동으로 검사해준다. 예를 들어, Reg D 506C는 적격 투자자들만 토큰을 거래할 수 있으므로 BCAP 토큰은 KYC를 통해 적격 투자자임이 확인되지 않은 주소로 토큰을 전송하는 것을 차단한다. 또한 적격 투자자의 숫자가 99명을 넘지 않아야 하므로 현재 99명의 적격 투자자가 있으면 토큰의 일부만 거래하는 것도 차단해준다. 컴플라이언스 검사가 거래소가 아닌 BCAP 토큰 자체에 내장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거래소에서 거래를 하든 컴플라이언스를 강제할 수 있다는 점이 기존 방식과의 차이점이다.
증권형 토큰의 컴플라이언스를 게임 아이템에 적용하면 지금까지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던 정교한 통제가 가능하다. 특정 게임 아이템을 성인 인증을 한 유저만 거래할 수 있도록 제한할 수도 있고, 게임 아이템을 구매한 후에 1개월 동안은 해당 아이템을 재판매할 수 없도록 강제할 수도 있다. 아이템 거래소가 아닌 게임 아이템 자체가 규칙을 강제하기 때문에 어떤 거래소에서 거래를 하든 동일한 규칙을 적용할 수 있다.
게임 아이템 자체에 컴플라이언스를 포함시키는 방법을 이용하면 게임사들이 게임 아이템 거래로 발생하는 사행성 논란에 대한 자율 규제가 가능해진다. 또한, 블록체인 상에 발행된 아이템 거래는 모든 거래 내역이 비가역적으로 남기 때문에 게임사들의 자율 규제가 구호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준수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도 있다. 필요하면 입법을 통해 규제안을 만들고 이를 강제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글에서는 게임 아이템을 예로 들었지만, 디지털 바우처, 쿠폰, e티켓 등 다양한 종류의 디지털 자산에 대한 컴플라이언스 논의가 필요하다. 모든 디지털 자산을 상품이나 증권으로 일괄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디지털 자산의 종류와 성격에 따라 적절한 컴플라이언스를 정하고 이를 정책적, 기술적으로 풀어가는 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고 증권형 토큰의 예와 같이 블록체인 기술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